[지방교회] 이스라엘 탐방(5) -
실로
2012년 10월 15일(월)
오늘은 실로를 탐방하였다.
실로(Shiloh)는 벧엘
북동쪽 16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키르벳 세일룬이다. 에브라임 산지에 있으며 벧엘과 세겜의 중간 지점어 위치한다(삿21:19).
실로는 고대로부터 세겜에서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목에 위치 하였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교통 중심지 중의 한 곳이었다.
가나언 땅을 정복한 여호수아는 실로에서 열 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였다. 실로가 위치한 산악지대는 에브라임 지파에게 분배되었다. 이후 실로는 통일왕국 전까지 종교와 정치와 군사적인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실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이후 회막과 법궤가 있었다. 그러나 사무엘 4장에 나오는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법궤를 빼앗기고 난 후부터는 이스라엘 역사의 종교중심지로서의 영향력을 상실했다. 다윗이 왕권을 장악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면서 실로의 위상은 더 저하되었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된 후로 실로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했다. 1979년 이스라엘 정부는 실로를 공식적인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하고 교육시설과 편의시설을 설치하였다. 실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사이에 체결한 '오슬로 협정'에 따라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기구인 요르단 서안지구(웨스트 뱅크)에 속한다. 실로에는 유대인들의 회당이 여러 개 있고, 성경의 성막을 복원시킨 미시칸 실로회당도 볼 수 있다. 실로에는 돌무더기로 된 사각형 모양의 집터가 있다. 이곳이 실로의 장막성전이 있던 곳이다. 실로는 여호수아 때 정치 종교의 중심지가 되었으며(수22:9,12), 이곳에서 마지막 일곱지파가 땅을 분배받았다. 사사시대에는 실로에서 매년 여호와의 절기를 지켰다(삿21:19). 다른 지파와의 전쟁으로 아내를 얻지 못했던(삿21:7) 베냐민 지파 사람이 절기 때 이곳에서 춤을 추던 실로 여인들을 납치하여 아내로 삼았다(삿21;20-23). 여로보암이 왕이 될 것을 예언한 선지자 아히야는 실로 출신이었으며 여로보암의 아내가 병든 아들이 어떻게 될지 물으러 간 곳도 실로였다(왕상14;2-4). 창세기 49장 10절의 '실로가 오기까지'는 몇 가지 해석이 있지만 가장 합당한 해석은 장차 유다지파를 통해서 오실 메시야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민24;9)
성경말씀
(창 49: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수 18: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에 회막을 세웠으며 그 땅은 그들 앞에서 돌아와 정복되었더라 (수 18:10) 여호수아가 그들을 위하여 실로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고 그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의 분파대로 그 땅을 분배하였더라 (삿 18:31)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가 만든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삼상 1:3)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삼상 1:24)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세 마리 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삼상 3:21)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삼상 4:4)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삼상 4: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열두 광주리 가득히
4권 12장>
전쟁이 끝난 후,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땅에 진입하여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회막을 세웠다(수 18:1). 늙은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은 악했고 여호와를 몰랐지만 제사장의 일을 하고 있었다. 엘리는 그들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하나님보다 아들을 더 중히 여긴 것이다. 후에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예언하기를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삼상 2:32)라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막을 떠나신다는124뜻이다.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삼상 3:1-4). 여기에서 하나님의 궤가 있는 전(殿) 안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고 회막의 외양도 이전과 같았지만, 하나님은 함께하지 않으려 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때 하나님은 엘리를 부르시지 않고 사무엘을 부르셨다. 하나님은 엘리에게 말씀을 주시지 않고 사무엘에게 말씀을 주셨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엘리를 제쳐 놓으시고 어린 사무엘을 택하셔서 그를 선지자로 세우신 것이다(삼상 3:20). 언약궤는 얼마 후에 곧 실로의 장막을 떠나게 되었다. 사무엘상 4장 3절의 말씀에 “백성이 진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라고 했다. 블레셋 사람과 전쟁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실패했을 때, 그들 생각에는 언약궤만 가져오면 승리할 줄 알았다. 여호와의 회막은 실로에 있었고 그들이 언약궤를 메어다가 진에 들여올 때,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쳤다(삼상 4:5).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이스라엘은 블레셋 사람에게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육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다(삼상 4:10-11). 당신은 보았는가? 사람들은 위험할 때 언약궤를 이용하려고 하였지만 결국 언약궤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들은, 언약궤만 그들 가운데 있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을 도우실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절대로 언약궤를 버리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 이것은 얼마나 엄숙한 일인가! 아, 어떤 사람들은 ‘내게는 하나님이 있으니까’,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니까’ 승리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졌던 것과 똑같은 오산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패배한 것은 그들이 그들의 죄를 해결하는 문제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승리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생명과 교회를 인식함
10장>
정상적인 상태에서 언약궤와 회막은 절대로 분리되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정상적인 상태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외형의 표현은 분리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실패하고 황량해지고 패망하는 비정상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에서 유명한 ‘언약궤 박탈 사건’이 일어났다. ‘언약궤 박탈 사건’은 하나님의 백성의 실패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간증을 잃어버린 것을 예표한다. 구약의 예표에서 이러하고 신약의 실재에서도 동일하다. 교회의 타락과 실패 후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간증이 빼앗겼고 상실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때부터 언약궤와 회막은 분리되었다. 회막과 언약궤는 각각 다른 곳에 있게 된다. 회막은 실로에서 기브온으로 옮겨졌지만 언약궤는 그곳에 있지 않았다.
처음에 하나님의 백성은 정상적인 상태에
있었다. 그들 가운데는 회막이 있었고 회막 안에는 언약궤가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은 회막과 그 안에 있는 언약궤를 봉사의 중심으로 삼았다.
이로써 그들은 땅에서 하나님의 간증을 지켰다. 하나님은 회막 안에 있는 언약궤 위에서 그들과 함께하셨다. 그러나 어느 날 그들의 대체적인 상황은
실패로 돌아갔고 언약궤는 빼앗겼다. 그때부터 언약궤와 회막이 분리된 것이다. 회막은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이 주의하는 곳이 되었고, 언약궤는
다른 곳에 있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밖에 있는 회막을 보았고 그 회막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 안에 거하는 소수의 사람들의 눈은 그 회막에 있지 않았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주의했다.
<창세기 L/S 메시지
103>
이것은 경쟁이 있었음을 가리킨다. 뒤에 성전이 장막의 연속으로 예루살렘에 세워졌다. 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후 다음 세대에 여로보암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과 겨루어 단에 좀 더 견고하게 설치된 우상을 세웠다(왕상 12:26-31). 여로보암은 만일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경배하러 간다면 그들이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 돌아갈 것을 두려워하였다(왕상 12:27).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왕상 12:28-29). 여로보암은 백성들에게, 『너희는 예루살렘에 갈 필요가 없다. 우리는 바로 여기에 경배의 중심지를 두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행한 것은 그의 왕국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나왔다. 그리하여 단과 예루살렘 사이의 경쟁이 심화되었다. 먼저 단은 실로에 있는 장막과 경쟁하였다. 후에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과 경쟁하였다. 구약에서 우리는 먼저 실로에 있는 장막과 단에 있는 새긴 신상과의 경쟁을 본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의 경쟁을 본다. 하나님의 성전이 견고하게 건축된 후 단에 있는 우상 역시 더 견고하게 되었다. 실로에 있는 장막과 단에 있는 분열적인 경배의 중심지는 둘다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세워졌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은 왕 솔로몬이 건축하였으며 분열적인 중심지 역시 왕 여로보암에 의해 강화되었다. 이것은 매우 분명한 경쟁의 묘사이다. 상황은 오늘도 동일하다. 교회가 견고하게 건축될 때 교파 역시 더 견고하게 될 것이다. 교파들의 강화하는 것은 교회와의 경쟁에서 나온다. 머지 않아 다른 무리들이 주님의 회복과 경쟁할 것이다. 성경 속의 실로 실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기 이전부터 이미 고대 가나안인들을 위한 제의 장소였다고 추측된다. 이스라엘이 이 장소를 어떻게 차지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성경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으나,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실로에 회막을 세우고 성소로 삼았다(수 18:1). 이스라엘 각 지파에 대한 토지 분배가 이곳에서 이루어졌고(수 18:10), 전쟁을 할 때에는 이곳에 집결했다(수 22:12). 실로 성소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던 매우 초기 시대부터 이스라엘 역사의 구심점인 장소였고, 정치적 군사적 중심지였다. 이러한 실로의 위상은 사사시대 동안 그대로 이어졌으나,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궤를 전쟁에 미신적으로 이용했다가 블레셋에게 빼앗기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삼상 4:11).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셔서 블레셋에서 돌아왔으나 실로로 돌아가지 않고 벧세메스를 거쳐 기럇여아림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다윗 시기까지 머물렀다(삼상 6:20-21, 삼하 6:1-2). 그때 이후로 실로엔 언약궤 없이 성막만이 남았다(시 78:60-68).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우고 경배의 중심지로 삼은 후 실로는 다른 이스라엘의 도시들과 마찬가지의 평범한 도시로 전락하여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이 도시는 북왕국 멸망 때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파괴되었으나 곧 재건되어 포로기 시대에는 사람이 다시 거주하게 되었다(렘 41:5). Ⅰ. 위치 및 지형 A. 실로(Shiloh)는 벧엘 북동쪽 16㎞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키르벳 세일룬(Khirbet Seilun)이다. 이곳은 에브라임 산지에 위치하며, 벧엘과 세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삿 21:19). 실로는 해발 379m의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B. 실로는 고대로부터 세겜에서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목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지역의 교통의 중심지 중 한 곳이었다. 가나안 땅을 점령한 여호수아는 실로에서 열두지파에게 땅을
분배하였는데, 이 때 실로가 위치한 산악지대는 에브라임 지파에게 분배되었다. 이후 실로는 통일왕국 시기 이전까지 종교·정치·군사적 중심지 역할을
담당했다. 실로에
126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이후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었던 회막과 법궤가 있었다. 회막과 법궤의 중요성을 생각해 볼 때, 이들이 위치했던 실로의 중요성 역시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무엘상 4장에 나오는 블레셋과의 전투로 법궤를 빼앗기면서 실로는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실로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종교에 있어서 영향력을 상실했다.
C. 또한 통일왕국 시대에 실로는
대로(大路)와 광활한 농경지의 결핍으로 인해 그 중요성이 낮아졌다. 다윗이 왕권을 장악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면서 실로의 위상은 더
저하되었다.
D. 이후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되고
신언자들이 활동하던 시대, 특히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시대에 실로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폐허가 되었다고 전해진다(렘 7:12-14). 실로는
헬라제국과 로마제국이 통치하던 시대에도 폐허로 방치되었다.
E.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알리야(Aliya,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귀환 운동) 운동은 20세기에 들어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졌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1948년의 이스라엘
재건으로 인해 귀환은 폭발적으로 증가되었다. 이때 실로 지역에도 이주자들이이주자들이 정착하여 살기 시작했다. 현재의 실로는 ‘구시
에무님(Gush Emunim, 이스라엘의 종교적 극우조직)’에 의한 정착촌 건설 운동이 활발하던 1970년대 후반에 건설되었다. 1979년에
이스라엘 정부는 실로를 공식적인 이스라엘의 영토로 인정하고 교육시설(헤스더 예시바, 정통파 유대교도를 위한 학교) 및 편의시설을 설치하였다.
실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 사이에 체결한 ‘오슬로 협정’에 따라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인 요르단 서안 지구 (웨스트
뱅크)에 속한다.
F. 실로에는 유대인들의
회당이 여러 개 있고 성경의 성막으로 복원된 미시칸 실로(Mishkan Shilo)회당도 볼 수 있다(사진4. 미시칸 실로(Mishkan
Shilo)회당 참조). 그리고 2006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인 실로의 언약궤 교회가 발견되었다. 실로에는 비잔틴 시대에
4개의 교회가 세워졌다고 하는데, 이 교회는 A.D. 380년경에 세워졌으며 홍수에 의해 파괴된 후 재건된 것으로 고고학자들은 추정한다. 교회의
바닥은 밝은 색상의 모자이크 및 예수님과 관련된 많은 비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모자이크 바닥에 있는 비문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세일룬과
그 주민들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아멘”이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G. 실로에는 돌무더기로 된
사각형 모양의 집터가 있다. 이곳이 실로의 성막 성전이 있던 곳이다. 그곳에는 올리브유를 짜던 틀과 포도주를 만들었던 유적, 물을 보관하였던
수조가 남아있다.
![]() 실로 위치 지도 ![]() 현재 실로의 유대인 정착촌 ![]() 현재 실로의 모습 ![]() 미시칸 실로 회당 ![]()
고대 실로 안내문
![]()
시대를 전환한 한나의 기도를
본받아 실로에서 함께 기도했다
실로는 사무엘이 자란 곳이기도 하다
![]()
실로에 관한 동영상을 보았다
법궤가 떠나자 실로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
지방교회생활
2012년 12월 2일 일요일
[지방교회] 이스라엘 탐방 실로
[지방교회] 이스라엘 탐방 (4) 야곱의 우물
(요 4:5-14) 예수님께서 수가라는 사마리아의 한
동네에 가셨다. 그 동네는 야곱이 그의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곳이며, 거기에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10)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만일 그대가 하나님의 선물과 또 그대에게 마실 물을 좀
달라고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았더라면, 그대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고, 그는 그대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입니다.”(12) “야곱 조상께서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그분 자신과 그
자손들과 가축이 이 우물물을 마셨는데, 선생님께서 그분보다 더 위대하십니까?”라고 하니(14)
누구든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원천이 되어 샘솟아 올라 영원한
생명에 이를 것입니다.
생명에 이를 것입니다.
<요한복음 L/S 메시지
11>
더욱이 하나님의 선물은 종교의 유산보다 더 크다. 당신은 야곱의 우물과 하나님의 선물 중 어는 것을 갖고 싶은가? 이 신성한 생명은 야곱의 우물보다 훨씬 더 좋다. 만일 오늘날 팔레스타인에 있는 야곱의 우물을 방문한다면 그 우물이 한 알미니안 수도사의 통제하에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내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 야곱의 우물에서 나온 물 한잔을 얻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2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전통이며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 우물에 있는 물은 다른 우물의 물과 동일한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의 선물은 종교의 유산보다 더 크다. 당신은 야곱의 우물과 하나님의 선물 중 어는 것을 갖고 싶은가? 이 신성한 생명은 야곱의 우물보다 훨씬 더 좋다. 만일 오늘날 팔레스타인에 있는 야곱의 우물을 방문한다면 그 우물이 한 알미니안 수도사의 통제하에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내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 야곱의 우물에서 나온 물 한잔을 얻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2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전통이며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 우물에 있는 물은 다른 우물의 물과 동일한 것이다.
<요한복음 L/S 메시지
12>
요한복음 4장의 그림은 또한 그 여인이 그리스도를 접촉한 후 모든 것을 포기했음을 보여 준다. 그녀는 우물과 물동이를 둘 다 놓고 갔다. 그녀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마을로 가서 그리스도에 관해 사람들에게 얘기했는데, 그것은 그녀가 한번 그리스도를 접촉하고 나서 오직 그리스도만을 자신의 만족으
로 갖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왜 사람들이 그리스도 이외의 수많은 것들에 대해 목말라하는지 알고 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리스도로 만족한다면 다른 모든 것들은 잊혀질 것이다. 만일 우리가 다른 이들을 도우러 가고자 한다면, 만족이신 그리스도를 다른 이들에게 가져다 줄 수 있도록 반드시 먼저 우리가 그리스도로 만족되어야 한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를 가지고 마을 사람들에게 가지 않았다. 그녀는 먼저 그리스도를 얻었고, 그런 다음에 그리스도를 가지고 그들에게 갔다.
요한복음 4장의 그림은 또한 그 여인이 그리스도를 접촉한 후 모든 것을 포기했음을 보여 준다. 그녀는 우물과 물동이를 둘 다 놓고 갔다. 그녀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마을로 가서 그리스도에 관해 사람들에게 얘기했는데, 그것은 그녀가 한번 그리스도를 접촉하고 나서 오직 그리스도만을 자신의 만족으
로 갖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왜 사람들이 그리스도 이외의 수많은 것들에 대해 목말라하는지 알고 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리스도로 만족한다면 다른 모든 것들은 잊혀질 것이다. 만일 우리가 다른 이들을 도우러 가고자 한다면, 만족이신 그리스도를 다른 이들에게 가져다 줄 수 있도록 반드시 먼저 우리가 그리스도로 만족되어야 한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를 가지고 마을 사람들에게 가지 않았다. 그녀는 먼저 그리스도를 얻었고, 그런 다음에 그리스도를 가지고 그들에게 갔다.
Ⅰ. 위치 및 지형
A. 위치 - 야곱의 우물은 텔 발라타(고대 세겜)로부터 2.4km 떨어진 나블루스(현재 세겜)에 위치하고 있다. 이 우물은 '야곱의 우물 교회'로 불리는 그리스 정교회 건물 안에 있다. 야곱의 우물은 성경에 나오는 지역들 가운데 위치가 확실한 장소 중 한 곳이다. 사마리아인, 유대인, 기독교인, 그리고 이슬람교도까지도, 구
약의 야곱과 신약의 사마리아 여인과 관련된 장소로서 이곳을 신성시하고 있다.
A. 위치 - 야곱의 우물은 텔 발라타(고대 세겜)로부터 2.4km 떨어진 나블루스(현재 세겜)에 위치하고 있다. 이 우물은 '야곱의 우물 교회'로 불리는 그리스 정교회 건물 안에 있다. 야곱의 우물은 성경에 나오는 지역들 가운데 위치가 확실한 장소 중 한 곳이다. 사마리아인, 유대인, 기독교인, 그리고 이슬람교도까지도, 구
약의 야곱과 신약의 사마리아 여인과 관련된 장소로서 이곳을 신성시하고 있다.
B. 신약시대 수가성 -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당시에 사마리아 땅은 유대인들로부터 천시받던 지역으로서, 유대인들은 이곳을 지나가는 것을 꺼려하였다. 그래서 당시 유대인들은 요단강 동편 베뢰아(Perea) 지역을 거쳐서 이동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 직접 이곳으로 찾아가 기다리셨다.
Ⅱ. 역사 속의 야곱의 우물
A. 로마 제국 시대 - 야곱의 우물은 긴 시간 동안 현재 위치에 존재해왔다. A.D. 330년 우물의 위치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눈 장소로 공인되면서 기독교의 침례 장소로 사용되었다. 4세기 제롬(Jerome)의 기록에 의하면 A.D. 384년에 우물이 위치한 곳 위에 교회가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B. 비잔틴 제국 시대 - 이 교회는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 황제 제노(Zeno)의 박해에 대항한 사마리아인들의 반란 기간 중(A.D. 484 - 529년)에 파괴되었다. 그 후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A.D. 483 - 565년) 황제에 의해 재건되었는데 9세기 초까지 존속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C. 십자군 원정 시대 - 비잔틴 제국 점령 시기에 지어진 이 교회는 1099년 나블루스를 점령한 십자군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다. 십자군 시대의 교회는 멜리센데 여왕의 지원을 받아 1175년에 완공되었고, 1187년 살라딘에 의해 파괴되었다.
D. 현대 - 1908년부터
러시아 정교회에서 현재의 교회 건축을 시작하였는데,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이후 그리스 정교회에서 인수해 공사를
재개했으나 재정난으로 지붕 없는 미완의 교회가 되었다. 90여년이 지난 1995년 공사를 다시 시작해 2005년 현재의 교회건물로
완성되었다.
Ⅲ. 유적지 및 관광지
본래의 야곱의 우물 언저리는 현재의 땅 표면에서 몇 자 아래에 있으며, 두레박이나 물 넣는 가죽부대를 끌어올렸던 줄로 인하여 닳아버린 깊은 홈을 볼 수 있다(사진4. 닳아버린 깊은 홈 참조). 이 우물의 직경은 2.4m 정도이고, 깊이는 50m 가량 된다. 우물의 윗부분은 돌을 나란히 쌓아 지표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아랫부분은 석회암을 파서 만든 것이다(사진5. 우물 외부 전경, 사진6. 우물 내부 전경 참조). 우물은 교회 안으로 들어가 우물이 있는 지하 토굴로 내려가야 볼 수 있다. 이 우물은 깊기 때문에 그 물맛이 시원하고 달다. 그리고 이곳은 저수조인 동시에 샘물로 이용되었다. 왜냐하면 이 우물은 지표수가 흘러 들어 갈 뿐 아니라 지하수도 솟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의 야곱의 우물 언저리는 현재의 땅 표면에서 몇 자 아래에 있으며, 두레박이나 물 넣는 가죽부대를 끌어올렸던 줄로 인하여 닳아버린 깊은 홈을 볼 수 있다(사진4. 닳아버린 깊은 홈 참조). 이 우물의 직경은 2.4m 정도이고, 깊이는 50m 가량 된다. 우물의 윗부분은 돌을 나란히 쌓아 지표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아랫부분은 석회암을 파서 만든 것이다(사진5. 우물 외부 전경, 사진6. 우물 내부 전경 참조). 우물은 교회 안으로 들어가 우물이 있는 지하 토굴로 내려가야 볼 수 있다. 이 우물은 깊기 때문에 그 물맛이 시원하고 달다. 그리고 이곳은 저수조인 동시에 샘물로 이용되었다. 왜냐하면 이 우물은 지표수가 흘러 들어 갈 뿐 아니라 지하수도 솟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야곱의 우물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성을 지나시는 중에 물을 길러 나온 여인과 대화하시던 곳이다. 요한복음 4:6에 '야곱의 우물'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 우물은 야곱이 요셉에게 주었던 땅에서 가까우며 근처에는 수가라는 성이 있었다(요 4:1-12). 이곳은 오늘날의 텔 발라타로 알려진 곳이나 구약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성을 지나시는 중에 물을 길러 나온 여인과 대화하시던 곳이다. 요한복음 4:6에 '야곱의 우물'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 우물은 야곱이 요셉에게 주었던 땅에서 가까우며 근처에는 수가라는 성이 있었다(요 4:1-12). 이곳은 오늘날의 텔 발라타로 알려진 곳이나 구약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교회당 내부에 있는 야곱의 우물

야곱의 우물 교회 내부

희랍정교회가 건축한 야곱의 우물
교회

우크라이나에서 온
희랍정교회인들 우물에서 물을 퍼올려 병에 담고
있다

갈릴리에서 유대까지 예수님의
여정
이스라엘 탐방 (3)에발산과 그리심산
[지방교회]
이스라엘 탐방(3) 에발산과 그리심산
2012년 10월
15일
(신 11:29-3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30) 이 두 산은 요단 강 저쪽 곧 해지는 쪽으로 가는 길 뒤 길갈 맞은편 모레 상수리나무 곁의 아라바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의 땅에 있지 아니하냐 (신 27:12-13)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13)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수 8:33)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삿 9:6-7) 세겜의 모든 사람과 밀로 모든 족속이 모여서 세겜에 있는 상수리나무 기둥 곁에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으니라 (7) 사람들이 요담에게 그 일을 알리매 요담이 그리심 산 꼭대기로 가서 서서 그의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세겜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그리하여야 하나님이 너희의 말을 들으시리라
<신명기
L/S 메시지 9>
신명기 11장 8절부터 25절까지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충고와 경고의 말을 기꺼이 지키면, 축복을 받을 것임을 본다.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를 지킨다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을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말을 기꺼이 지킨다면, 그들은 약속된 땅, 즉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나님께서 돌보시며 세초부터 세말까지 하나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우리에게 축복이 있느냐 저주가 있느냐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취하느냐 취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취한다면 우리에게는 복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저주가 있을 것이다. 29절에서 모세는 계속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고 한다. 우리가 축복을 받느냐 저주를 받느냐는 우리가 주님께 대하여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있으면, 우리는 축복을 받고 그리심 산 위에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없으면, 우리는 저주를 받고 에발 산 위에 있을 것이다. 29절에서 모세는 계속하여,『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고 했다. 모세가 이스라엘 여섯 지파 -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요셉, 베냐민-는 그 백성을 축복하기 위해 그리심 산에 설 것을 명했다(11-12절). 모세는 또한 다른 여섯 지파-르우벤, 갓, 아셀, 스불론, 단,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도록 명했다(13절). 그들이 어느 무리에 들어갈 것인지에 대해서, 지파들은 선택 없이 하나님의 정하심을 받아들여야 했다. 레위인들은 백성들에게 큰 소리로 말함으로 응답했고, 15절부터 26절에 기록된 저주들을 발했다. 저주받은 자들로는 다음 사람들이 포함된다. 우상을 만드는 자(15절),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16절),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17절), 소경으로 길을 잃게 하는 자(18절),……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26절) 등이다.
Ⅰ. 에발산과
그리심산
A. 에발산과 그리심산은 가나안 땅 중심부에 위치한 산이다. 에브라임 지역에 속한 에발 산과 그리심 산은 세겜(수가, 나블루스)을 가운데 두고 에발산(해발 920m)은 북쪽에 위치해 있고, 그리심산(해발 854m)은 남쪽에 위치해 있다. B. 세겜에서 바라본 그리심 산은 햇빛이 잘 비치는 남쪽에 위치해 있어서 밝고 물이 풍성하고 숲이 울창하고 풍성한 산으로 축복의 상징이 되었지만, 북쪽에 위치한 에발산은 민둥산이면서 그늘진 산이기에 저주의 상징이 되었다고 추측하는 학자들도 있다. 축복의 상징이었던 그리심은 그 의미대로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상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C. 에발산과 그리심산은 세겜을 감시하는 천연의 요새였다. 에발산과 인접해 있는 그리심 산과의 사이에 있는 공간은 음향의 반향 작용이 매우 뛰어난 천연 계단식 극장이 있다.
Ⅱ. 에발산
A. 에발산의 에발은 ‘민둥 산’을 의미한다. B. 에발산의 낮은 경사지에서는 포도나무나 올리브나무 같은 식물을 재배하는 것이 가능하나, 더 높은 곳은 바위투성이의 불모지라서 경작이 불가능하다. 사마리아의 다른 산들처럼, 에발산 역시 표면은 백악질(석회질) 토양으로 덮여 있고, 그 아래는 석회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C. 에발산은 현재 에벨 에슬라미예(Jebel Eslamiyeh)로 불린다.
Ⅲ.
그리심산
A. 그리심산의 그리심은‘제거하다'‘자르다’‘베어버리다’라는 의미를 담은 ‘가라즈’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그리심산은 해발 919m의 석회암으로 구성된 무미건조한 산이다. 그리심산이 위치한 세겜 지역은 고대부터 남북과 동서를 잇는 주요 도로가 교차하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B. 예로부터 그리심산은 사마리아인들의 종교적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스룹바벨의 지휘 아래 예루살렘에 제2성전을 재건할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재건을 도우려 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리하여 사마리아인들은 그들만의 성전을 그리심산에 짓는다. 그러나 B.C. 107년 요한 히르카누스(John Hyrcanus)에 의해 세겜 지역이 파괴당할 때 성전 역시 허물어졌다. C. 그리심산은 현재 에벨 엣투르(Jebel et-Tor)라고 불린다.
가나안 땅
중심부에 위취한 산이다 이곳은 고대로부터 남북과 동서를 잇는주요 도로가 교차하고 있으며 교통의 중심지였다
세겜(수가, 나블루스)을 가운데 두고 에발산(해발920m)은 북쪽에 그리심산(해발854)은 남쪽에 위치해 있다. 에발은 민둥산을 의미하고 그리심은 제거하다를 의미한다. 모세는 신명기 1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여섯 지파로 나누어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로부터 그리심산은 사마리아인들의 종교적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스룹바벨의 지휘 아래 예루살렘 제 2성전을 재건할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재건에 동참하려 했지만 거절 당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은 그들의 성전을 그리심산에 지었다 그러나 BC 107년 요한 히루카누스에 의해 세겜지역이 파괴당할 때 성전 역시 허물어졌다 그리심산은 현재 에벪엣투르라고 불린다 ![]()
에발산과 그리심산
전경
![]()
그리심산의 사마리아
성전터
![]()
그리심산의 사마리아
회당(키르얏 루사)
![]()
그리심산에 있는 사마리아 박물관 랍비가
본인이 쓴 책을 소개하고 있다.
|
이스라엘 탐방 (1)
[지방교회] 이스라엘
탐방(1) - 소개의 말
지방 교회(local Church) 인도자들 44명 탐방팀(한국 35명, 미극 9명)은 일반 성지순례자나 관광객들과는 달리 성경에 나오는 60여 군데의 지명을 선택하여 역사적으로 성경적으로 고고학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하기 위하여 오랫동안 준비하였다 한국에 있는 인도자들 35명은 탐방의 질을 높이기 위해 출국하기 전에 2박 3일동안 미리 학습훈련을 하여 가려고 하는 곳에 대하여 철저하게 스타디 하였다 2012년 10월 13일-28일까지 15박 16일동안 이스라엘을 탐방하기 위하여 10월 13일(토) 대한항공 KE957 편으로 이스라엘을 향하예 출국하였다 ---------------------------------------------------------- [지방교회] 이스라엘 탐방(2) -세겜 (창 12: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창 33:18-20)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19)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20)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창 37:12-14)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14)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수 24:27)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고 (수 24:32)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삿 9:6) 세겜의 모든 사람과 밀로 모든 족속이 모여서 세겜에 있는 상수리나무 기둥 곁에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으니라 (삿 21:19) 또 이르되 보라 벧엘 북쪽 르보나 남쪽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쪽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도다 하고 (왕상 12:1)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메시지 3> 아브라함은 세겜에 이르렀다.'세겜'은 원문에서 어깨라는 뜻이다. 어깨는 사람의 몸에서 가장 힘있는 곳이다. 세겜 땅의 첫 번째 특징은 능력이다. 성경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기적적인 능력일뿐 아니라 또한 사람을 만족하게 하는 생명의 능력임을 볼 수 있다. 누구든지 주님의 생명을 얻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수 있다. 이는 그의 속이 이미 만족되었기 때문이다.속이 만족한 사람과 생명을 얻은 사람이 가장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세겜에'모레상수리나무'가있다.'모레'는 원문에서 '교사' 혹은 '가르침'이라는 뜻이 있다. 이것은 지식의 방면이다.모레의 상수리나무가 세겜땅에 있다는것은 지식이 능력으로부터 온다는 뜻이요 지식은 능력의 결과라는 뜻이다. 바꾸어 말해서 참된 영적인 지식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사람을 만족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을 얻지 않았다면 우리에게는 참된 영적지식이 없을 것이다.그런 지식은 사람에게 영적인 어떤 것을 줄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이 이 땅에서의 그분의 간증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그릇을 사용하신다면, 하나님은 그 그릇에게 어떤 교리를 들려주시는 것이아니라 먼저 그를 만족하게 하고 생명의 능력을 준 다음 참된 지식을 갖게 하신다. 이 두 가지의 차이는 너무나 큰 것이다. 하나는 교리이고 하나는 생명이다. 하나는 밖에서 들은 것이고 하나는 속에서 본 바이다. 하나는 잊어버릴가능성이 있지만 하나는 항상 속에서 기억한다. 모든 참된 지식은 생명의 능력안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곧 우리의 능력이다.우리안에 어떤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남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내적인 능력이자 내적인 지식이다. <창세기 L/S 메시지 76> 야곱은 라반의 손으로부터 구출되었다. 그는 또한 에서와의 문제로부터 구출되었으며 숙곳에 이르렀고 거기서 자신을 위한 집과 가축을 위한 우릿간을 지었다. 나는 거기서 머문 야곱에게 평강이 없었으리라 믿는다. 그러므로 그는세겜으로 올라왔으며 그의 열조의 발자취를 따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살기 위해 제단의 간증이 있는 합당한 장막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세겜에서의 그의 생활은 하나님의 표준에 달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목적은땅에서의 그분의 집인 벧엘을 갖는 것이다. 야곱과같이 오늘날 많은 형제자매들은 여전히 세겜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분의 수준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갈망은 만족되지 않았다. 이것 때문에 어떤 불행한 일들이 자꾸 자꾸 그들에게 발생하여 그들의 마음으로하여금 일어나서 벧엘로 올라가 거기 거하고 제단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준비 시킨다. 나는 내가 야곱과같은 일을 해온 것을 간증할 수있다. 나는 단순하게 나의 맹세와 헌신을 잊었다. 나는 우리 모두가, 특히 어려움과 시련의 시간 동안에, 주님께 헌신했음을 믿는다. 그러나 당신은 자신의 맹세를 이행했는가? 아마 우리 중 아무도 이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을볼 때 우리 모두가 야곱들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역사는 사실상 우리의 자서전이다. 주님께 우리 자신을 헌신하겠다고 맹세하더라도, 우리의 맹세를 이행하고 우리의 헌신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한명의 딸, 열 한명의 아들, 세겜, 하몰,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과 일들의 희생이 요구될지 모른다 주의 회복안에서 그분은 우리가 세겜을 통과하여 벧엘로 가기를 원하시고 단체적인 교회생활로 올라가기 위하여 우리의 개인적인 생활을 통과하기를 원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세겜에서 좋다할지라도 우리에게 만족할만한 평강과 안정이없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세겜을 떠나 이땅에서 그분의 집안에서 합당한 교회생활을 갖도록 벧엘로 올라가라는 주님의 말씀을 취하게 한다. A.아브라함(Abraham)-세겜(Shechem)은 아브라함이 그곳에서 하나님으로부터땅에 대한 약속을 받으면서 구약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아브라함은 '세겜땅모레상수리나무'에서 하나님을 위해 단을 쌓고 가나안땅을 그의 후손들에게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창12:6-7). B.야곱(Jacob) 1.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아들들의 경계로 인해 밧단아람 땅을 떠나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다. 이때 '숙곳(Succoth)'과 '와디 파라(Wadi Parah)'를 통해 세겜에 도착하였다. 2. 야곱은 잠시 세겜 근처에 머무르면서 그 지방의 하위 방백인 하몰의 아들(세겜)로부터 은 일백 개로 땅을 사서 '엘-엘로-헤이스라엘(El-Elohe-Israel,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명하고 단을 쌓았다(창 33:18-20 3. 야곱 일가가 세겜에 머무르는 동안 하몰의 아들 세겜이 야곱의 딸 디나를 강간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창 34:2), 야곱의 두 아들(시므온과 레위)은 하몰과 세겜을 포함한 모든 남자를 살육하고 그 성을 약탈하였다(창 34:25). 이후 야곱과 그의 열두 아들들은 세겜을 떠나 헤브론 땅의 마므레(Mamre)에 머물렀다. 4. 야곱의 가족들이 이곳에 묻혔으며(행 7:14-16), 훗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자손들에 의해 요셉의 뼈도 이곳에 묻혔다(수 24:32). C.여호수아(Joshua) 1. 여호수아는 모세가 축복과 저주를 선포할 장소로 선택한 세겜으로 모든 이스라엘 지파를 소집하여 백성의 절반은 그리심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세우고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다(수 8:30-35). 2.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의 영토 경계에 인접한 세겜은(수 17:7) 에브라임 지파에게 분배된 땅이었지만, 고핫 자손에게 재분배되었고, 도피성이 세워졌다(수 20:7, 21:21)(사진2. 레위 지파의 도시와 도피성 참조). 3. 여호수아는 죽기 전 다시 한번 이스라엘 민족을 세겜으로 불러모아 그들과 더불어 '우리 하나님을 우리가 섬기고 그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는 언약을 세운 후 그 증거로 큰 돌을 세워 증거를 삼았다(수 24:24). 세겜에서의 의식은 시내 산에서 맺어진 언약을 재확인한 것이었다. 이후 세겜은 일정 기간 동안 이스라엘 열두 지파 동맹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D.사사시대-기드온이 죽은 이후에 그의 아들 아비멜렉은 자기 형제들을 죽이고 세겜에서 왕으로 등극했다(삿9:1-6).아비멜렉은 세겜에서 3년간 통치하였으나 세겜백성들이 반기를 들자 이 성읍을 파괴해 버렸다(수9:45). E.분열왕국시대-40년 동안의 솔로몬의 치세가 끝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된 르호보암은 왕권 확인식을 하려고 세겜으로 향했다(왕상12:1,대하10:1). 그러나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처신으로 인해 유다와 베냐민을 제외한 북쪽지파들은르호보암으로부터 돌아섰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아 세겜을 북이스라엘왕국의 첫번째 수도로 정하였다(왕상12:2025).그러나 세겜은 낮은 분지라는 치명적인 약점때문에 전략적 요충지가 될 수 없었고, 북이스라엘왕국은 수도를 세겜에서 북쪽으로 약 12km 떨어진 디르사(타루자)로 옮겼다. 디르사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바아사왕(왕상15:21), 엘라왕(왕상16:8), 시므리왕(왕상16:11)을 거쳐 오므리왕 6년까지 수도였다. 오므리왕은 전쟁시 방어하기에 유리했던 사마리아 성으로 천도하였다(왕상16:23-24) F.이스라엘왕국의 멸망과 포로기- B.C.722년 앗수르왕 사르곤2세는 북이스라엘왕국을 점령하였고, 이스라엘민족들을 메소포타미아로 붙잡혀 가면서 앗수르인들이 이곳에 이주하여 살도록 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히 이스라엘민족과 가나안족, 그리고 앗수르족의 혼혈이 생기게되었다. 이 혼혈들은 사마리아의 지명을 따라 사마리아인(Samaritan)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북이스라엘왕국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할 때, 세겜은 전략적 요충지가 아니었기때문에 파괴를 면할 수 있었다. 북이스라엘왕국의 잔류민들은 앗수르의 민족 혼합정책, 피하여 세겜으로 모여들었고, 그리심산(Mt.Gerizim)에 성소를 세우고북이스라엘사람만의 전통을 지켜왔다. 이후 남유다왕국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Nebuchadnezzar)에 의해 멸망하고,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잡혀 갔다. G.포로해방과귀환-그러나 바사(페르시아)제국에 의해 바벨론이 멸망하고, 고레스왕에 의해 해방된이스라엘민족은 스룹바벨의 인도아래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다. 이때 사마리아인들은 스룹바벨의 성전 재건을 도와주려 하였으나, 이스라엘민족으로부터 거절 당하자 성전재건을 방해했다(스4장). 이들은 모세오경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겼지만 혼합된 혈통과 종교 활동으로 끝내 정통 유대인들과는 분리되었다. H.신약시대-신약시대 예수님께서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었던수가(Sychar)성이 구약시대의 세겜이다(요4:3-42). I. 위치 및 지형 Geography A.지명-고대의 세겜(텔발라타,TelBalata)은 현재'나블루스(Nablus)'라 불리는 곳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나블루스는 새로운 도시, 즉 헬라어 네아폴리스(Neapolis)에서 기인한 이름으로 AD72년에 로마황제 베스파시아누스가 팔레스타인을 정복했을 때 건설한 도시였다. 많은 사람들은 세겜이 하몰의 아들 세겜(창33:18-19)으로부터 유래한 명칭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어깨'라는 뜻을 지닌 세겜이란 이름은 평지보다 조금 높은 곳인 에발산 기슭쪽으로 자리잡고 있어서 생긴 이름으로 보인다 B.위치-세겜은 중앙산악지대, 구체적으로 에브라임산지(사마리아지역)에 위치하고있다. 세겜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67km 떨어진 지점에 있다.세겜은그리심산과 에발산 사이에 위치하는데, 남북과 동서로 뻗은 주요도로가 만나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세겜은 물공급이 용이하고 동쪽으로 쭉 뻗은 비옥한 평야, 그리고 여러 곳으로 연결된 주요도로가 통과하는 등의 여러 요건들이 합쳐진 지리적 요충지이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의 영토는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로 인식되어 왔다. 단과 브엘세바사이의 직선 거리는 대략 230km 정도인데 그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가 바로 세겜이다. C.기후-세겜은 연평균 강우량이 적당하고, 물이 많은 곳이어서 고대로부터 농사짓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그래서 이곳에는 보리나 밀, 채소가 재배되었으며, 평지를 둘러싼 산비탈에는 포도, 무화과나무, 올리브나무가 경작되었고,목축에 좋은 풀밭도 많이 있었다(창37:12-13).헤브론에 살던 야곱이 그의 아들들을 세겜 근처로 보내 양을 치게 했다는 것만 보아도 세겜이 목축에 좋은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창37:12-15). D.교통-세겜은 지정학적으로 여러 갈래의 길들이 통과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사마리아 지방의 교통의 중심지였다. 남쪽으로는 산악지방으로 관통하는남북간도로(족장의길),곧 성경에 언급된 '큰길(삿21:19)'이 나 있어 실로, 벧엘, 예루살렘으로 갈 수 있었다. 세겜은 동쪽으로는 동부 고원지대(트랜스요르단)를 지나는 왕의대로와 연결되고, 서쪽으로는 사마리아를 지나 도단에이르는 길과 이스라엘 해안지대(샤론평야)로 내려가서 애굽과 메소포타미아를연결하는 해안길(ViaMaris)에 닿는 길이 있다. 특히 서에서 동으로 연결된 길(지중해해안에서요단동편)은 세겜을 지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러한 지정학적인 중요성 때문에 이곳에는 사람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살아왔으며 강력한도시를 이루었고, 이스라엘 모임의 장소로 성경에 자주 등장하였다. E.역사-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세겜이 알렉산더시대(B.C.322년경)에사마리아인들의 중요한 도시였고, B.C.107년 하스모니안 왕가의 군주이자 대제사장이었던 요한 히르카누스(JohnHyrcanus)에 의해 파괴되었다. B.C.63년에 로마장군 폼페이우스는 사마리아를 주(州)로 독립시켜 세겜을 그 주도(州都)로 삼았다. 제1차 유대반란시기(A.D. 67년)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 정상에 군사적 보루를 쌓았다. A.D.72년경 티투스(Titus)장군은 세겜땅에 신설도시를 세워 네아폴리스라고 불렀다. A.D.16세기경 나블루스는 팔레스타인 4대도시(예루살렘,가자,제파트,나블루스)가운데 하나였다. 1948년부터 요르단에 속했던 나블루스는 1967년(제3차중동전쟁)부터는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지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Ⅱ. 유적지 및 관광지 Historic and Tourist Sites A.텔발라타(TelBalata) 1. 고대 세겜(텔 발라타) - 성경에 등장하는 세겜은 현재의 텔 발라타이다. 텔 발라타는 현대 도시인 나블루스(세겜)의 동쪽에 인접해 있으며, 남서쪽으로 그리심산을 북쪽으로 에발산을 올려다 보는 계곡인 와디 파라(Wadi Farah)에 솟아 있는 낮은 언덕이다. 아브라함이 동쪽으로부터 요단강을 건너 세겜에 왔을 때, 이곳에는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 당시 것으로 생각되는 성문이 텔 발라타의 북쪽 부분과 동쪽 부분에 조금씩 남아 있다. 2. 텔 발라타에서 발견된 신전- 고대의 세겜(텔발라타, 나블루스 인근)은 1913년과 1934년에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발굴팀에 의해 최초로 발굴되었다. 요새화된 신전은 1926년 독일 학자 셀린(Ernst Sellin)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후 발굴팀은 그 당시의 최신의 방법을 활용하여 적어도 네 개의 정착층(가나안 시대, 이스라엘 시대, 유대/사마리아 시대, 헬라 시대)을 확인하였다. 또한 1956년과 1973년에 라이트(G. Ernest Wright)의 지휘 하에 미국 드루 대학과 맥코믹 신학교의 공동작업으로 대대적인 발굴이 이뤄졌다. 그들은 단단한 기반 위에 진흙 벽돌과 목재로 지은 다층식 신전이 지어졌음을 추정하였다. 이 신전은 사사기 9장에 언급되는 신당인 것으로 추측된다. 입구 좌우로 두 개의 높은 탑이 설치되었으며, 신전 위층 복도는 탑의 통로와 연결되어 있었다(사진5. 세겜 신전 상상도 참조). 입구 전방으로 제단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제단 앞으로는 석비가 존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신명기 27장 2절에 나타난 석회가 발라진 큰 돌이 이 석비인 것으로 추측된다(사진6. 여호수아의 석비 참조). 아비멜렉은 세겜 땅을 차지한 이후 이 신전을 곡식 창고로 사용하였다 여호수아는 죽기 전 다시 한번 이스라엘 민족을 세겜으로 불러모아 그들과 더불어 '우리 하나님을 우리가 섬기고 그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는 언약을 세운 후 그 증거로 큰 돌을 세워 증거를 삼았다(수 24:27). 세겜에서의 의식은 시내 산에서 맺어진 언약을 재확인한 것이었다. ![]() 현대 세겜(나불루스)의 전경 ![]() 텔 발라타(고대 세겜) 전경 ![]() 여호수아의 비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수24:27) ![]()
여호수아의 증거 돌 앞에서 찰칵!(2012.10.15)
|
피드 구독하기:
글 (Atom)